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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정부는 성평등·인권교육도서 회수조치를 철회하라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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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성평등·인권교육도서 회수조치를 철회하라

 

지난 8월 26일 여성가족부는 일부 초등학교에 배포한 ‘나다움어린이책’ 중 7종에 대해 “문화적 수용성 논란이 있음”을 이유로 회수 결정을 내렸다.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김병욱 미래통합당 국회의원이 해당 도서들이 동성애를 조장·미화하고 성관계를 노골적으로 묘사했다고 교육부장관을 질타한 지 하루 만에 취해진 조치였다.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시피, 문제가 된 7종의 도서는 여러 나라에서 아동 성평등·인권교육 도서로 활용된 바 있고 국제엠네스티의 지원 하에 발간되거나 세계 최고 권위의 아동문학상과 작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작가와 교사, 평론가 등 전문가로 이뤄진 위원회가 심사하여 우수도서로 선정한 책들이다.

해당도서들이 국내외의 인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개인이나 집단, 해당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에 따라 수용의 편차가 존재할 수는 있다. 문제를 제기한 일부 기독교단체와 매체, 국회의원이 그러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이 사안에 대해 보여온 보수적 시각을 고려한다면 새삼 놀라거나 실망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교사, 평론가, 작가 등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자율적으로 도서를 선정한 ‘나다움어린이책 도서위원회’의 결정이 훼손되었으며, 이 책들을 문제가 있는 것인 양 낙인 찍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더 심각한 것은 한 나라의 교육을 책임진 교육부가 사안에 대한 충분한 검토도 없이 즉석에서 신속한 조치를 약속하고, 여성가족부는 하루 만에 해당 도서에 대한 회수조치 결정을 내렸다는 점이다. 이 책들이 정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전문가나 학부모 등의 토론 한번 거치지 않았다. 이 책들이 ‘동성애를 조장하고 노골적으로 성관계를 묘사하는 부적절한 책’이라는 일부의 비판을 정부가 이렇게 신속하게 인정해줘도 괜찮은 것인지, 위원회의 결정과 과정을 일방적으로 취소할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해당 도서들은 여성가족부의 ‘나다움어린이책’ 선정 사업에 선정되지 않았다면, 그리고 교육부가 배포하지 않았다면 교사들과 학부모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선택되었을 것이고, 더 많은 어린이 독자들에게 읽혔을 것이다. 이번 사태는 국가가 우수도서 선정 및 보급에 어떻게 관여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다시 한 번 묻게 한다. 해외에도 종종 국가기관이 문학상 제도를 운영하거나 우수도서를 선정하는 경우는 있지만, 심사과정에 관여하거나 선정위원회의 심사결과를 뒤집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불필요한 정치의 개입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해당 사업이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진정한 권위를 갖게 되는 지름길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우리에게는 정부 권력이 개입함으로써 블랙리스트 도서들을 양산했던 전례가 있다. 이번 사태는 우리 출판인들로 하여금 블랙리스트의 어두운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출협은 세계 각국에서 널리 읽히고 있는 도서들을 ‘부적절한’ 책으로 만든 일부 언론과 정치인에게 유감을 표한다. 또한 이들의 비판을 즉각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작가와 출판사, 선정위원의 명예를 훼손한 교육부와 여성가족부에도 반성과 사과를 촉구한다. 교육부와 여성가족부는 아이들이 “자기긍정,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를 지향”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는 성평등·인권교육을 설계해야 한다. 여기에는 아이들을 공동체의 올바른 시민으로 키운다는 교육 본연의 목적만이 고려되어야 한다. 정치적 당파간의 이해관계로 그 본연의 목적이 훼손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2020. 8. 31.

(사)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윤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