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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_문체부의 블랙리스트 책임자 처벌과 사과에 다시 한 번 문제를 제기한다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19-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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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31일, 문체부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집행에 관여한 공무원들에 대한 책임규명 이행계획을 발표했고 도종환 장관과 공공기관 단체장들은 머리를 숙여 사과를 했다.

2018년의 마지막 날 갑작스럽게 보고회가 마련된 것도 옹색한 일이지만, 책임규명 범위가 여전히 협소한 데 대해 출판계는 실망감을 금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문화예술계를 폐허로 만들었던 블랙리스트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수사의뢰 10명, 징계 1명, 주의 67명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문제는 책임규명의 범위만이 아니다. 책임규명이 얼마나 공정하게 이루어졌는지 의문이다. 출판계의 경우, 블랙리스트 책임자인 김일환 前출판인쇄과 과장은 이번 이행계획에서 수사의뢰 대상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전임 대통령 탄핵 사유의 핵심사건을 저질렀던 한국콘텐츠진흥원을 관리·감독했던 윤태용 前문체부 문화콘텐츠정책실장은 자리를 옮겨 지금 현재까지 한국저작권보호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김일환 과장을 압박하며 진두지휘한 한민호 前문체부 미디어정책국장 역시 아무 징계 없이 자리를 옮겨 현재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사무처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결과보고서에서는 수사의뢰 대상이었으나 문체부가 주도한 셀프 수습과정에서 이들은 전직 예우를 받으며 문체부 산하기관으로 자리를 옮겨 임기를 끝내가고 있는 것이다.

블랙리스트를 실행했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하 출판진흥원) 직원들도 처벌받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前독서진흥본부장은 견책 징계를 받았지만 문체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는 이유로 ‘불문경고’로 감경되어 사실상 징계를 받지 않았다. 또 다른 직원은 블랙리스트 실행에 깊숙이 관여되어 있었지만 공익제보자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았다. 출판진흥원은 여전히 스스로를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책임자 및 실행자의 범위를 최소화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면책해주는 문체부의 처사는 블랙리스트와 같은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학습효과를 관료사회에 만들어낼 것이기에 우려가 크다. 또한 문체부가 산하기관에 대해 불법적인 일이라도 자신들의 지시를 이행한 부분에 대해서는 끝까지 보호해주겠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있다. 도종환 장관과 공공기관 단체장들이 머리를 숙여 사과했지만,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일이 보고회 이전에도 이후에도 계속 벌어지고 있다.

블랙리스트가 실행되었던 대표적 사업인 세종도서사업에 대해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는 민간위탁을 권고했고, 그 권고에 따라 지난 12월‘세종도서 선정사업 개선 TF’가 구성되었다. 출판계와 도서관계, 문체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자율적·개방적 민관협치 모델로서 ‘세종도서사업 운영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문체부를 제외하고 TF에 참여한 6개 기관. 단체 모두가 합의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문체부는 ‘세종도서사업 운영위원회’에 출판단체의 이름이 명기되어 있다는 이유로 합의안에 반대하고 있다. 그 반대한다는 내용이라는 것은 출판진흥원 내부에서 논의해서 결정할 운영세칙에 관한 사안이며, 이 부분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산하기관의 자율적 운영을 가로막는 부당한 개입이다. 이는 또 하나의 새로운 블랙리스트 사태가 아닐 수 없다.

1월 4일에는 도종환 장관이 한국콘텐츠 진흥원을 방문했다. 지시를 받고 블랙리스트를 시행했던 기관을 방문하는 것인데 문체부가 산하기관에 부당한 지시를 했던 것을 사과했다는 취지로 알려져 있다. 이런 식이라면 곧 출판진흥원을 방문해 사과하는 진풍경이 벌어질 것이다. 콘텐츠진흥원이든 출판진흥원이든 문체부의 지시를 받아서 벌어진 불법적인 일들에 대해 아직 진상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처벌 받은 사람도 없고 처벌을 할 계획도 밝힌 적이 없는데, 누구에게 어떤 내용의 사과를 하러 간 것인지 의문이지 않을 수 없다. 문체부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조직을 다독이기 위해 도종환 장관을 들러리로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작 문체부와 출판산업진흥원 양자로부터 피해를 받은 출판사들과 출판단체는 누구로부터 위로 받고 사과를 받아야한다는 것인가.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를 위한 책임규명 및 제도 개선 논의과정에서도 민간업계는 독립적이고 공정한 업무수행을 할 수 없으니 그 논의의 중심에 설 수 없다는 문체부의 2차 가해에 끝까지 시달려야 했던 출판인들은 누구로부터 위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인지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이것이 촛불시민들의 힘으로 정권을 부여받은 현 문재인정부의 문화정책인 것인가?

출판계는 문체부의 책임자 처벌과 사과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문체부가 어떻게 약속을 이행하는지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이 문제는 문화 행정과 문화의 민주주의, 나아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의 미래를 가늠케 하는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사)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윤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