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상담실

정당한 인용의 범위와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작성자
대한출판협회
작성일
2017-06-12 11:04
조회
4005

김기태 / 저작권상담실 자문위원․세명대학교 미디어창작학과 교수

◆ 사례 개요

출판을 목적으로 원고를 작성하다 보면 이미 출간된 다른 책의 내용을 참조하거나 ‘인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원고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공표된 각종 자료들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저작물의 내용이 논지의 근거 자료로 활용되는 것이 불가피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때로는 저자가 인도한 원고를 편집자가 다듬는 과정에서 독자들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보다 원활한 이해를 돕기 위해 임의로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일부 첨가하기도 한다. 특히, 경제․경영서를 비롯해서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들의 과제물을 보면 상당 부분 참고문헌에서 ‘인용’한 내용으로 채워지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도표를 포함한 통계 자료가 대부분인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다른 저작자의 글이나 사진, 또는 그림을 일부 가져와서 적절히 배합하고 싶은데, 문제는 저작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이런 경우 출처만 명백하게 표시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을까? 과연 정당한 인용의 범위와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 법률적 검토 : 정당한 인용의 범위와 한계

현행 저작권법 제25조에 따르면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위해서라면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 즉, 공표된 저작물을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의 목적으로 ‘인용’하는 것은 저작재산권 침해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당한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는 방법이어야 한다. 여기서 인용(引用; quotation)이란 “다른 저작물의 내용 가운데에서 한 부분을 참고로 끌어다 쓰는 것”을 말하며, 특히 어문저작물을 작성함에 있어서는 매우 흔한 이용 방법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당한 범위’ 또는 ‘공정한 관행’에 관한 해석에 있다.

먼저 정당한 범위에 대하여 살펴보면, 다른 저작물을 자기가 작성하는 저작물에 인용해야만 하는 필연성이 인정되어야 하며, 또한 자기 저작물의 내용과 인용 부분 사이에는 일종의 주종관계가 성립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자기가 창작하여 작성한 부분이 주(主)를 이루고, 그것에 담겨 있는 주제를 좀더 부각시키거나 주장의 타당성을 입증할 목적으로 다른 저작물의 일부를 종(從)으로서 인용했을 때에 비로소 정당한 범위 안에서의 인용이 성립된다. 다만, 다른 저작물의 일부라고 하는 것은 논문이나 소설 따위처럼 분량이 비교적 많아서 전체적인 인용이 불필요한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며, 사진이나 그림 또는 시 따위처럼 그것의 일부 인용이 불가능한 것까지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다음으로 공정한 관행이란, 인용 부분이 어떤 의도에서 이용되고 있으며, 어떤 이용가치를 지니는가에 따라 달라질 문제이다. 즉, 사회적인 통념에 비추어 보아 타당하다고 여겨지는 방법으로서의 인용만이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인용되는 부분을 자기 저작물과는 명확하게 구별되는 방법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의미까지도 포함한다. 예컨대, 보도의 자료로서 저작물을 인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 자기나 다른 사람의 학설 또는 주장을 논평하거나 입증할 목적으로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인용하는 경우, 역사적 사실이나 경향을 살피는 글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다른 저작물--시 또는 사진, 그림 따위--을 통째로 싣는 경우 등은 바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인용에 있어서는 출처 명시의 의무가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인용 부분에 대한 적절한 구분이나 출처의 명시가 부정확하다면 그것이 인용인지 창작인지를 분간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피인용 저작물을 거의 그대로 전재하면서 그 비평이나 연구는 실질적으로 행하지 않아 단순한 소개 정도에 그치고 있으면서도 그 출처가 명시되지 않은 점”, 그리고 “자신의 저작물과 피인용 저작물이 분명히 구분되고 있지 않으며 그 인용 분량이 방대한 점” 등에 비추어 정당한 인용이라고 볼 수 없다는 판례(서울민사지방법원 제51부 1994.4.18. 결정, 94카합2072)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 이용자들이 주의할 점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일부라도 인용할 때에는 그 부분에 인용부호를 붙이거나 단락을 바꾸어 본문과는 다른 활자로 표시함으로써 인용 부분을 구분해야 한다. 또한 학술관련 전문서적이나 논문에서는 출처로서의 저자명, 책명 또는 논문제목, 발행처, 발행년도, 해당 면수 등을 적절한 위치에 주(註) 표시로써 밝히는 것이 통례이고, 이러한 의무 사항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 저작물은 신용이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부연한다면, 우선 인용의 목적이 정당해야 한다. 저작권법에서는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들고 있으나 이는 예시에 불과하므로 이에 준하는 예증․해설․보충․강조를 위한 인용도 가능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인용이 비영리적인 목적에 국한되고 상업적 성질의 인용은 불가한지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광고에서처럼 영리 목적의 인용은 인용의 목적상 정당한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다수의 견해이다. 또, 분량과 가치 면에서 인용의 정당한 범위를 판단하는 것은 사실문제로서 개별사안에서 법원의 판단에 최종적으로 맡길 수밖에 없다. 다만, 인용되는 분량, 작성하는 저작물이 주(主)가 되고 인용되는 저작물이 종(從)이어야 한다는 주종관계, 저작물의 형태, 이용목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하고 있다. 또, 인용 부분이 자기 저작물보다도 양적으로 많은 경우에는 인용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가 있지만 일률적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구체적인 경우에 있어 인용의 목적으로부터 보아 필요한 최소한도의 인용인가의 여부에 따라 결정해야 할 것이다. 또, 인용하는 저작물과 인용되는 저작물이 질적인 주종관계에 있어서도 안 된다. 질적인 주종관계가 오히려 양적인 주종관계보다 중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질적인 주종관계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로 양자가 시장적 경쟁관계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들고 있다. 즉, 인용하는 저작물이 등장함으로써 인용되는 저작물의 시장 수요를 대체하거나 잠재적 시장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일부 저작자들이 이를 잘못 이해해서 인용이 아닌 것을 인용이라고 믿고 저작권 침해문제를 불러일으킴으로써 출판인이나 편집자까지 그 분쟁에 말려드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저자의 순수창작물인 줄 알고 출간했는데 다른 작가의 글을 여기저기서 도용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출판사의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는 것이 현실임을 잊지 말아야겠다.